‘전쟁’ 1932. 출처=위키아트 |
‘군인으로서의 자화상’ 1914. 출처=위키아트 |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오토 딕스(Otto Dix·1891~1969)입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인 딕스는 자신이 살고 있던 독일의 모습을 작품에 담고자 했습니다. 딕스가 살았던 20세기 초 독일은 그야말로 전쟁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죠. 딕스는 전운이 감도는 독일의 모습과 전장에서 목격한 이미지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1차 대전 참전…전쟁의 참상 사실적 표현
딕스의 초기 작품들은 인상주의 스타일의 초상화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 딕스의 화풍이 확 달라진 계기가 있다고 하네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딕스는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전장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드레스덴의 미술학교에 다니던 23살 청년 딕스는 1914년 8월 자원입대를 합니다. 그가 군대에 가게 된 이유를 들어볼까요?
“내 주변에서 어떤 이가 갑자기 쓰러지고 죽고 탄환이 명중되는 것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이 전부를 정확히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그걸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평화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것이죠. (중략) 아시는 것처럼 나는 ‘리얼리스트’입니다. 나는 내가 리얼리스트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눈으로 봐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원해 전쟁터로 향한 것입니다.”
자원입대까지 하며 전쟁을 직접 바라보길 원했던 딕스는 군 복무 중 엄청난 양의 전쟁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틈만 나면 데생을 하거나 구아슈(고무를 섞은 수채물감)로 작품을 그렸지요. 주로 우편엽서 뒤에 그린 딕스의 작품들은 드레스덴에 있는 가족과 여자 친구에게 보내졌는데, 그 수가 600여 개가 넘을 정도입니다. 딕스는 전쟁터와 주변 풍경, 동료 병사 그리고 자화상을 주로 그렸습니다.
맹목적인 살기가 느껴지는 자화상
당시 그려진 이미지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1914년 가을 군에 막 입대한 뒤 그린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입니다. 자원입대를 하면서까지 전쟁을 목격하고자 했던, 젊은 딕스의 열정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포병연대에 배속된 그가 훈련을 받은 직후 그린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남김없이 밀어버린 딕스의 모습은 갓 훈련소에 입소한 우리나라 신병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네요. 잔뜩 힘이 들어가 긴장된 목과 날카로운 눈빛을 붉은 색채와 거친 붓질로 표현, 광적인 전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동시에 그 열기에 지배돼 맹목적인 살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러시아와 폴란드의 동부전선에 잠시 배속됐던 딕스는 다시 서부전선으로 돌아와 북프랑스와 벨기에 남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면서 딕스는 어리바리한 신병에서 전사로 변해갑니다. 전투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여러 번 훈장을 받기도 했죠. 그리고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뒤에도 더 복무하다 이듬해 12월 12일 준특무상사 계급장을 달고 전역했습니다. 4년여에 걸친 군 생활 동안 승진을 거듭한 결과였죠.
전역 후에도 강박적으로 전쟁 그림 그려
고향에 돌아온 딕스는 거의 강박적으로 전쟁에 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쟁터를 무대로 한 그림과 상이용사 등 퇴역군인들이 주된 주제였죠. 이번엔 1929년부터 3년 동안 제작한 ‘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쟁’에서는 중세 미술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3폭으로 나눠진 제단화 형태는 중세에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림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3폭이면 그림이 세 가지인 것이 일반적인데 딕스는 가운데 부분을 나눠 하나의 주제를 더 다룹니다.왼편에는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군인들이 전투를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가운데 윗부분에는 처절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참호 속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딕스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부상한 전우를 구출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딕스입니다. 가운데 아랫부분에는 고된 전투를 마치고 살아남은 군인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전쟁은 “벗어나지 못하는 꿈”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딕스는 전쟁 뒤 찾아온 평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그렸습니다. 대부분 ‘전쟁’처럼 참혹한 느낌과 고단함이 담긴 작품들이었죠. ‘리얼리스트’를 꿈꾸던 청년 딕스에게 전쟁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안깁니다. 딕스는 훗날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포복을 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을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결국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말에서 우리는 딕스가 왜 그렇게 참혹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전쟁을 그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딕스는 전역 후에도 계속 전쟁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이런 설명도 했습니다. “미술은 일종의 ‘퇴마 의식’이다. 나는 많은 것을 그렸다. 전쟁, 악몽, 무시무시한 것들…. 그림은 자신의 내면에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내 안에는 엄청난 혼돈이 있다.”
‘미술학도’ 딕스에게 전쟁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온전히 목격하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장을 거친 딕스에게 전쟁은 ‘벗어나지 못하는 꿈’이 됐습니다. 그리고 딕스 안에 펼쳐진 환상과도 같은 이미지들은 그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탄생,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딕스는 전쟁 그림을 그리면서 전쟁을 통해 얻은 상처를 치유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전쟁의 실상을 전해주죠. 전쟁이 한 사람의 예술가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도 함께 알 수 있게 해주고요.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국방일보 201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