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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내 판단능력은 50대 때와 전혀 차이 없어. 오히려 정숙이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예전에 신랑이 뭘 잘못해서 내가 혼낸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러나?"
 
지난 3일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의 성년후견개시 신청으로 법원에 출석했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말이다. 그를 대리하고 있는 김수창(법무법인 양헌) 변호사는 "이번 일로 신 총괄회장이 아주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발언과 반응을 보면 신 총괄회장은 성년후견인제도를 과거 금치산제도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아직까지 성년후견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성년후견제는 금치산제와 다르다. 금치산제는 금치산자의 행위능력을 박탈해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는 가족들이 아닌 피후견인자의 미약한 의사능력이나 행위능력을 보충해줌으로써 그의 잔존능력을 보장하고 사망 전 까지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취지가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에 대한 몰이해가 아직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법령정비와 행정지원 시스템 마련 등 후속 조치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장 개정 민법에 따라 금치산자가 2018년 7월1일 이후 사라지지만 공직선거법, 신탁법, 인감증명법 등 굵직한 법령 안에는 여전히 '금치산자'라는 용어와 관련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소송에서 신정숙씨를 대리하고 있는 이현곤 변호사는 "여전히 후견인 없이도 자식들이 치매 부모를 은행에 데려가 돈을 빼올 수 있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며 "이런 관습이 성년후견제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시 후견인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후속 법령 정비 이후 성년후견 사건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츄오대 법학과 마코토 아라이 교수가 <요미우리 신문> 기고를 통해 제시한 성년후견인제도 개선방안. 그는 성년후견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기관의 적극적 개입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츄오대 홈페이지
물론 일본 성년후견제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 마코토 아라이 츄오대 법학과 교수는 <요미우리 신문> 기고문에서 "2000년 도입된 일본의 성년후견제 활용이 정체해 있다"고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다양한 민간기관의 개입이 이뤄지는 독일의 성년후견제 시스템을 제안했다. 그는 "독일에서 성년후견인제가 광범위하게 이용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사법부를 지원하는 다양한 민간기관의 존재"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의 경우 후속법령 정비가 신속히 뒤따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대상자별 정부 소관부처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성년후견제 도입과 관련된 입법 정비는 법무부가 했지만 치매관리는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또 치매환자 외 성년후견 대상이 되는 정신분열, 지능장애 등에 대한 관련법 정비와 행정지원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때문에 성년후견제 자체를 특별법으로 제정해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무색하게 성년후견제 후속 입법 작용은 2013년 시행과 함께 동력을 잃은 상태다. 법무부는 민법 개정 뒤 당초 예고한 '후견인 표준계약서' 제정 작업을 3년 째 손을 놓고 있다.
 
답답하기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최동익 의원, 같은 당 윤관석 의원이 각각 2014년 9월 정신보건법 개정안(정신병원 강제입원 후견인 통해 제한), 2015년 5월 자본시장법 개정안(결격사유에 한정치산·금치산자 제한) 등을 대표발의했지만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치매관리법 개정안 또한 발의 직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돼 논의 됐으나, 비용추계요구서가 제출된 뒤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개정안은 "후견인을 필요로 하는 치매노인에 대한 지원이 법적 근거 마련"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후속 입법정비 외에 문제가 되는 것이 후견인의 피후견인에 대한 범죄에 대한 처리다. 아직까지 후견인으로 가족이 선임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형법은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친족간 재산범죄에 대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고 있고, 최근 이를 악용한 범죄가 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때문에 가사사건 전문가들은 후견인의 피후견인에 대한 범죄에 '형법상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도 이런 경우 '친족상도례 적용 제외'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법부의 해석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아키타 지방재판소는 2006년 10월 숙모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된 조카가 약 2년에 걸쳐 숙모의 재산 총 1800만엔을 횡령한 사건에서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후견인의 지위에 취임해 재판소의 광범위한 감독을 받으며,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면서 "피고인은 위탁자의 입장에 있었으므로, 이 사건에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조카가 항소했지만 역시 패소했다. 센다이 고등재판소는 2007년 2월 조카의 항소에 대해 "가정재판소의 선임과 감독 아래에서 성년후견이 행해지는 이상, 피후견인에 대한 성년후견인의 재산 범죄 등 부정행위는 국가가 책임지고 더 엄정한 대처를 해야 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끝>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양재동 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 신청사건 심리를 마치고 휠체어를 타고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



뉴스토마토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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