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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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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틸(Steel)이라는 학자가 만든 다음 질문에 ‘늘 그렇다’는 5점, ‘전혀 아니다’는 1점으로 독자들도 점수를 매겨 보길 바란다.

 

1.

나는 너무 늦은 지경까지 결정을 지연한다.

2.

결정을 한 후에도 실제 실행을 지연한다.

3.

나는 최종 결정에 도달하기 전에 여러 사소한 것들에 시간을 허비한다.

4.

마감에 맞추는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종종 다른 것들을 하는데 시간을 쓴다.

5.

나는 단순히 앉아 하면 되는 일조차도 며칠이 걸려도 완수하지 못하곤 한다.

6.

나는 종종 며칠 전에 하려고 했던 과제를 지금에야 한다.

7.

나는 늘 “내일 해야지”라고 말한다.

8.

나는 해야 할 일의 시작을 보통 미룬다.

9.

나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10.

나는 시간에 맞춰 일을 하지 못한다.

11.

나는 모임의 마감 시한을 잘 지키지 못한다.

12.

예전에 마지막 순간까지 미뤘다가 손해 본적이 있다.


몇 점의 점수가 나왔는지 합산해 보기 바란다. 물론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일을 미루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상습적인 혹은 만성적인 미루기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리라는 심리학자의 추측에 의하면 거의 20% 정도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 위 질문에 총점이 36점 이상이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배경도 필자가 원고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고 부리나케 쓰면서 “나는 왜 그럴까?” “미루기의 심리적 기제가 무엇일까?” 등이 궁금해서였다. 필자도 사실 상습적으로 미루는 습관을 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된 생각과 연구 결과를 이야기 해보자.

 

미루기는 나쁜 행동일까?

 

지연이나 미루는 습관의 결과는 경우에 따라서 본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첫째로, 미루기가 나쁜 행동은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뭐라고 해도 미루기가 아주 나쁜 습관은 아니고 더구나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행동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다. 일을 언제 완료하는가 보다는 잘하는 게 중요하고, 결국 늦게라도 하기는 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적인 압박이 있을 때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도 한다. 필자도 글을 쓸 때 미리미리 계획에 맞춰 준비하며 집필 작업에 착수 하지 않는다. 우선 주제를 생각하고, 그 내용을 어떻게 어떤 순서로 풀어 갈지를 머릿속에서 만들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다시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마감일까지 미루거나 넘기고 급하게 마무리를 지은 후 ‘휴’하고 한숨을 쉬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마무리는 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교묘하게 장점만 부각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연이나 미루는 습관의 결과가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에게 자기 기만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포트 제출이 늦어 감점을 받는 학생이나 나쁜 업무 고과를 받게 되는 직장인을 보면 명확해 진다.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도 이 네이버캐스트에 미루다 급하게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자괴감에 빠진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글을 썼을까, 문법도 맞지 않고 내용도 횡설수설하고 등등” 전문적인 작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글을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 하며 완성도 높은 글을 위해 미리미리 준비하며 초고, 재고, 삼고를 거쳐야 하는데 말이다. 필자도 지연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미루기는 시간 관리의 실패?

 

미루기 행동을 단순히 시간 관리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활동에는 효용성이 있으며, 당장 해야 되는 것들은 더 하기 쉽거나 즐겁기에 먼저 하고, 마감일이 돼서야 하기 힘든 과제가 중요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우선하다 보니 늦어지고 지연된 것이라고, 말하자면 시간 관리를 잘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루기는 잘못된 시간 관리의 문제이기에 그리 심각하게 여기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루기가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일까?

 

미루기가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출처: gettyimages>

 

바움마이스터라는 심리학자는 한 학기 동안 대학생들의 미루기 행동, 학업 수행, 스트레스, 전반적인 건강상태 등을 추적하여 측정하였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초기에는 미루기 정도가 높은 학생들에게서 스트레스가 낮았다고 한다. 아마도 일을 미루고 여러 즐거운 활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말에는 미루기의 대가가 일시적인 이득을 능가했다고 한다. 미루기꾼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낮은 평점을 받았고 높은 스트레스와 나쁜 건강 상태를 보고했다고 한다. 일도 마무리 못하고 심리적, 신체적 안녕감에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핸드폰과 같은 장치를 통해 대학생들의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의 미루기 행동과 정서 상태를 온라인으로 추적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준비해야 할 과제가 힘들어 질수록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그러면서도 일하기는 미루고 다른 재미나는 행동에 빠졌다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높은 수준의 죄책감도 느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들도 현재하는 재미나는 일이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한 때 농담 삼아 잘 알려진 격언인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로 바꿔 쓴 적이 있다. 당장의 힘든 과정을 회피한 것이다.

 

연구 결과들은 미루기가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는 아니며, 정서 과정, 자기-통제, 충동성과 같은 성격 특성 등과 함께 작용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출처: gettyimages>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미루기가 단순히 시간 관리의 실패는 아니며, 정서 과정, 자기-통제, 충동성과 같은 성격 특성 등과 함께 작용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루기가 자기 기만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약화시키는 부적응적인 생활 방식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준다. 신경심리학적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뇌에 전전두엽은, 일을 계획하고 잘 되는지 확인하면 완수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보통 심리학자들은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ing)이라고 부른다. 라빈과 동료들은 212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과 관련된 미루기와 충동성, 자기 점검, 계획 세우기, 활동 전환, 과업 시작과 점검, 정서 통제, 작업 기억, 질서 정연함과 같은 아홉 가지 집행기능을 함께 측정하고 관련성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미루기는 이 아홉 가지와 모두 의미 있는 관련성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이들 관계가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이지만 미루기가 “아주 미묘한 집행기능 장애”의 표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루기의 굴레를 벗어나는 법

 

그러면 어떻게 미루기의 굴레를 벗어나야 할까? 해야 할 일 전체를 다루기 쉽도록 작게 나누어 미루지 말고 즉각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의 만족을 장기적인 목표와 타협하는 인식도 중요할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마감을 스스로 관여하는 자신만의 마감일로 바꾸는 작업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각적인 만족이나 감정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들이 갖는 긍정적이며,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도 있으며, 특히 일이나 과제가 갖는 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네이버캐스트     2013.04.29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3&contents_id=2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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