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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론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자살시도 늘어난 ‘생명의 다리’ 논란… 자살률 1위 국가의 안일한 대응 재고해야 



“밥은 먹었어?” 늦은 밤, 팔짱을 낀 연인이 마포대교를 지나가자 난간에 불이 들어오면서 ‘밥은 먹었어’라는 글씨가 뜬다. 난간에는 동작인식 센서가 장착돼 있다. 난간 앞에 앉아 혼자 소주를 마시는 노숙자 한 명이 깜빡거리는 센서를 향해 소리친다. “아, 밥 먹었다고. 밥 먹었다고 몇 번을 말해. 넌 그거밖에 할 말이 없냐?” OECD 자살률 1위라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튼 단편 영화 <한강레퀴엠(민경락 감독)>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자살률 1위의 장소 ‘마포대교’의 풍경을 담고 있다. 영화 속 또 다른 장면. 마포대교를 배경으로 기자가 리포트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요.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 기자의 리포팅대로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바람 참 좋다” 등 마포대교 난간마다 쓰여 있는 따뜻한 말들이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데 효과를 발휘했을까.

마포대교 난간 자살방지 문구 / 정지윤 기자

 

 

예방효과보다 ‘명소화 효과’로 장소 부각

오는 9월 마포대교에 자살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됐던 ‘생명의 다리’가 중단될 예정이다. ‘생명의 다리’는 서울시와 삼성생명의 협력사업으로 2012년에 설치됐다. 다리 난간에 동작인식 센서를 장착해 난간에 불이 들어오면 ‘밥 먹었어?’와 같은 문구가 뜬다. 비용은 삼성생명이 전액 부담했다. 보도에 따르면 경기불황으로 삼성생명이 예산을 더 이상 지불하기 어려워 사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치비용은 약 6억원. 연간 운영비는 1억5000만원 정도다. 삼성생명이 1년에 이만한 돈을 지불하기가 어려울까. 삼성생명 관계자는 “사실 저희 같은 회사에서 그만한 1년 유지비가 부담되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돈보다는 효과가 없어서다. “처음에는 1년만 하기로 한 사업이고 효과가 있어서 연장하기로 했는데, 그게 논란이 좀 있어서….” 삼성생명 관계자가 말하는 논란은 생명의 다리가 본래 목적인 자살예방 효과가 없다는 논란이다. 2012년 설치된 후 생명의 다리는 전 세계의 온갖 광고상을 휩쓸었다. 칸 국제광고제와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등 세계 광고제에서 39개의 상을 받았다. 2013년 11월에는 한강대교에 같은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고로서 가치는 있었을지 몰라도 자살예방 효과는 없었다. 2012년 한 해 15명이었던 마포대교 자살시도자 수는 생명의 다리 설치 이후, 2013년 93명으로 6배, 2014년에는 184명으로 12배가 늘었다.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은 한강다리에서 자살시도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지난해 5월 기준 한강대교 자살발생 건수는 총 33건(2014년 5월까지 현황을 연간으로 환산하면 79.2건이다)으로 2012년 27건, 2013년 40건에 비해 늘었다는 것이다. 다리별로 보면 2년 연속 마포대교에서 자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서울시가 마포대교 투신자살을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는 있지만 자살 건수는 도리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살다발장소에 대한 실증적 연구 없어

전문가들은 마포대교에서 자살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명소화 효과’를 꼽았다. 정진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생명의 다리가 설치되고 미디어가 이 곳을 조명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마포대교를 떠올리게 된 것”이라며 “밝은 이미지를 강조해서 ‘자살률 1위’ 다리라는 인식을 바꾸게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견해도 비슷하다. “너무 감성적인 접근은 오히려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증적인 이론이 아니고 하나의 가설이지만, 사실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다. 시간이나 장소 선택부터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자살을 결심하고 마포대교에 오른 사람들 중에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의미들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애초 생명의 다리 설계 단계에서 이런 상황과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웠을까. 난간에 장착된 동작인식센서가 작동해 자살시도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면, 자살을 막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어떤 논의과정에서 나온 결론일까. 삼성생명과 서울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은근히 서로에게 미루는 모양새다. 삼성생명 측은 삼성생명은 후원자 입장일 뿐이고, 사업의 주체는 서울시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설계는 광고에서 출발했다. “처음 시작은 광고하는 사람들(제일기획)과 같이 논의를 해서 그분들이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과정에서 정신의학, 상담 등 자살예방과 관련해 함께 참여한 전문가들이 누구냐고 묻자, “그것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다 알아서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시 측은 ‘생명의 다리’가 제안부터 비용까지 삼성생명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처음 제안도 삼성생명이 했고, 아이디어 자체도 그렇다.”

투신자를 수색 중인 수난구조대원 / 경향신문 자료사진



실질적 예방차원의 대책 마련해야

3년 동안 자살예방 효과 없이 오히려 자살시도자를 늘렸던 ‘생명의 다리’는 한국 사회가 자살을 대하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마포대교는 대표적인 자살 다발 장소다. 그러나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몇 년째 안고 있으면서도 한국에는 자살 다발 장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위원은 “마포대교 사례만 봐도 거기에서 자살이 왜 많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없다. 자살예방 사업을 실천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살론>을 쓴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자살예방을 두 가지 차원으로 분석했다. 첫째는 긴급구조적 자살예방이다. 자살 위험성에 노출된 사람들 중 급박한 채무압박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자기 존엄성이 파괴되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긴급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중장기적인 예방이다. 각 지자체에 정신보건상담센터를 두는 등 전사회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자살 다발 장소에서의 자살예방은 긴급구조적 자살예방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포대교 자살시도자에 대한 분석자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11일 출범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112생명수호팀은 출범 이후 4개월간 마포대교 동쪽 난간에서 구조한 140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했다. 분석 결과 시간대별로는 수요일 오후 10시대에 자살 시도가 가장 많았고, 연령층으로는 20대가 가장 많았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던 자살 시도 사유는 생계문제(25.2%)였다. 자살 다발 장소에서 경제적인 원인으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의 자살을 막았던 대책 중 하나로 일본의 사례가 있다. 일본 후지산에는 주카이라는 ‘죽음의 숲’이 있다.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숲인데 길을 잃기도 쉽고 이 곳에서 자살을 한 사람도 많아 미스터리를 소개하는 한국 TV프로그램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런데 ‘죽음의 숲’ 입구의 한 간판에 쓰여진 문구 덕분에 많은 자살시도자들이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오랜 시간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빚이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숲 입구에는 ‘전국 신용카드 빚 피해자 연락협의회’의 이름으로 ‘빚 문제 반드시 해결 가능합니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협의회의 전화번호와 함께 ‘우리도 당신과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도 함께 쓰여 있다. ‘전국 신용카드 빚 피해자 연락협의회’는 일본 전역에 88개가 있다. 대부업체들의 터무니없는 고금리와 빚독촉으로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이 많아지면서 법률가 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빚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가 연락을 하면 협의회는 피해자에게 가까운 피해자 모임을 소개하고 변호사들은 이들에게 무료로 빚 문제를 상담해 주고 중재를 한다. 또 행정기관에서는 생활보호 등 당사자에게 적용가능한 지원을 해준다. 실제로 죽음의 숲 앞에서 자살을 결심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협의회에 전화를 건 후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살예방 대책으로 마포대교 통행을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자살률에 차이가 있을까. 죽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곳을 선택해 간다.” 정진욱 연구위원의 말이다. 자살예방에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주카이숲의 간판이 자살시도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간판의 문구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제1차 자살예방 대책을 추진했고, 2011년부터는 제2차 자살예방 대책을 시행 중이다. 제2차 자살예방 대책에는 다중채무의 상담창구 정비 등 경제적인 고통을 사회적인 대처로 해결하려는 정책들이 담겨 있다. 그 결과 경제적인 원인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18.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카이숲의 간판 또한 이러한 사회적인 움직임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형민 부연구위원은 “한국 사회는 자살에 대한 우려와 호기심만 있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국가의 정책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는 것이다. OECD 자살률 1위라고 늘 말하지만, 자살을 예방한다며 세운 ‘생명의 다리’에서 자살시도자가 늘어난 현상은 자살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자료: EBS 다큐프라임 <삶과 죽음의 그래프>

 

박송이 기자

 

경향신문  2015. 08. 15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15143957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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