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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1. 한눈에 보기에도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59세 여성이 외래를 통해 찾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함께 사는 사실혼 관계 남성이 전날 밤 술 취해 집안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었다. 이 남성은 20년 이상 매일 술에 취해 살 정도로 음주에 빠진 알코올사용장애자였고, 이전에도 수차례 집안 기물을 부수고 폭행을 해 경찰이 여러 번 출동했다는 것이었다. 이로인해 벌금형을 받은 적도 있으나 이 남자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2. 21세 남성이 군입대 후 신병훈련소에서 불안ㆍ떨림ㆍ실신 증상으로 귀가조치를 당한 뒤 찾아왔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이 남성은 남들 앞에 나서거나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극도의 불안, 초조, 떨림 증상에 시달렸다고 했다. 어머니와 면담을 해보니, 이 친구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과다한 폭음을 했고, 취하면 어린 환자를 깨워 잔소리를 하고 이유 없이 때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했다.


#3. 안구뼈 골절로 안과진료를 받는 한 30대 남성이 부인과 함께 불안, 불면을 호소하며 외래를 찾았다. 한 달 전 아내와 귀가 중 술 취한 3명의 남자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뒤 안구뼈가 골절됐고,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성격이 예민해져서 쉽게 짜증과 화를 내고, 이로 인해 부인과도 잦은 다툼을 벌이게 됐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명백한 알코올사용장애자가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히고 있는 사례다. 세 번째 사례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불특정의 사람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힌 경우다. 고도주 소비량이 세계 최고이며 과폭음이 일반화 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음주문제는 개인 뿐 아니라 그 가족과 사회가 함께 경험하는 문제다.

 

통계에 따르면 2010~2012년 연평균 3만 건 이상의 강력 주취폭력이 발생했다. 주취폭력으로 인해 신체적ㆍ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답답한 것은 가해자 대부분이 알코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현행 법 체계에서 주취범죄자들에게 알코올사용장애에 대한 치료를 받게 할 근거는 없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가해자의 음주문제라던지 상습적인 음주운전자의 음주문제에 대해서는 치료적 개입을 명할 수 있는 근거가 일부 있으나,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취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약식 공소를 통해 벌금형 정도를 받거나, 일정기간 형을 살고 나와 이후 음주를 지속하며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감호법개정안을 통해 주취범죄자가 신체구금 대신 전문의료기관에서 알코올치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 워싱턴D.C. 지역이나 여러 주에서는 공공장소 등에서의 주취상태에서의 소란에 대한 법적 조치는 무척 단호하다. 신고에 의해 출동한 경찰은 주위 소란이나 폭행자를 바로 주취센터로 연행해 유치하고 하룻밤 뒤 음주문제에 대한 평가를 거쳐 의무치료 여부 결정을 위한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알코올사용장애자의 치료경험율이 우리나라의 2배인 것은 의무치료제도가 잘 시행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감호법 개정은 주취범죄의 재발을 막아 사회 안전을 도모할 뿐 아니라 알코올사용장애에 대한 치료를 활성화 해 우리 사회 전반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잘 시행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적절한 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과 주취범죄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ㆍ문화적 인식의 형성이 그것이다. 이번 치료감호법 개정안이 국민의 행복과 복지수준 향상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착한 사법 법무 행정의 사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2015. 04. 24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8048e914a6064f62aea11c5e8e014f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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