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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죄책감에 시달려 제2의 자살을 충동질할 것인가

 

 

 

[BOOK]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

 

 

 

 

죄책감에 시달려 제2의 자살을 충동질할 것인가
 
떠난 자의 인생을 지키는 남아있는 자의 슬픔엔 묘약이 없다. 처음엔 같이 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고 자위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이 슬픔의 끝을 알 수 없다. 위로하는 자의 의무가 끝날 때, 남겨진 자의 고통스러운 삶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는 자식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부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2008년부터 시작한 ‘자작나무’(자살유족의/작은 희망/나눔으로/무르익다) 프로그램에서 만난 부모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자기 삶의 역사’를 들춰내며 서로를 위로한 것이 책 발간의 시작이다.

책은 자살한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부모가 ‘내 아이는 왜 죽었을까’란 의문을 꼭짓점으로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추적하는 형식을 취했다. 어이없는 자살 소식이 들려오던 날은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다. 그 문이 열릴 땐 익숙한 것은 낯선 것으로, 낯선 것은 익숙한 것으로 바뀌고, 슬픔의 속성은 자책으로 이어져 남겨진 자의 ‘제2의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는 기억한다. “아버지, 제가 부담스러우세요?”라고 남긴 아들의 마지막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던 자신을. 그리고 아들의 유서에 적힌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실은 아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붙잡고 싶었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원인을 찾기위해 자신의 역사를 되짚는다. 어려운 시절을 인내로 버티며 살았던 자신이 목표 없는 삶에 방황하던 아들에게 무엇을 강요했는지 하염없는 죄책감으로 상처를 하나씩 쓸어담는다.

대를 이어 순종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는 딸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억눌린 삶의 흔적을 하나씩 지운다. 딸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선물을 주고 떠났다. ‘엄마에게 미안해’란 아들의 유서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똑같이 닮아있는 아들의 불안감을 읽고, 경계의 삶에서 고통받던 39세 딸의 죽음앞에 선 어머니는 딸이 그린 그림을 통해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책의 주인공 4명은 그렇게 슬픔을 견디고, 길들여진 삶에서 보지 못했던 속살들을 끄집어 이전의 상처를 치유한다.

기억의 사슬들을 하나씩 풀어헤치며 만나는 이들의 경험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뭉친 감정의 동요로 시작해 뒤늦게 아이의 인생을 따라가며 얻는 자각을 거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삶의 방향성으로 완성된다.

자살유족들이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있음에서 없음으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히 상실의 경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은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중요한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 애도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 나를 재정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도란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죽이기위해선 슬퍼하기로 시작해야한다.”

슬픔을 생각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것은 자작나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삶의 적응 수단이다. 생각으로 슬퍼하는 것은 혼자이고, 말로 슬퍼한다는 것은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상실이 또다른 상실을 낳지 않도록, 우리는 살아가야할 이유를 언어로 표현해야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자작나무 지음. 푸른역사 펴냄. 224쪽/1만5000원

 

 

 

김고금평 기자

 

머니투데이 뉴스 2015. 01. 17

[출처] http://news.mt.co.kr/mtview.php?no=2015011418024150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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