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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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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4일은 정신건강의 날이다. 숫자 4가 한자 ‘죽을 사’(死)와 소리가 같아 부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예방·치료에 나서자는 뜻으로 1968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날짜를 정했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18살 이상 남녀 가운데 27.6%가 평생 한차례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깝지만 왜곡된 병, 정신질환과 10년 가까이 싸워 이겨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벽 2시, 그는 구겨진 신발을 신고 옥탑방을 나왔다. 종일 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거리로 나서면 한밤인데도 현기증이 일었다. 동전 하나 없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는 쓰레기통을 찾았다. 남들이 먹다 만 피자나 통닭이 그날치 먹을거리였다. 그렇게 그는 5년을 버텼다.

 

경기도 한 소도시에서 자란 김철수(가명·55)씨는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했다. 졸업하던 해에는 중소 건설회사에 무난히 취업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그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치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공공근로를 하면서 직장 구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2001년 봄 어렵게 건설회사 현장소장 자리를 얻었지만 공사가 끝나자 또 해고였다. “그해 겨울 공사 현장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건물을 하나 지어 팔자며 다가왔어요. 사기를 당한 거죠.” 10년 넘게 꿀벌처럼 일해 모은 아파트 2채를 비롯해 10억원 넘는 재산 전부가 눈송이 녹듯 사라졌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김씨는 부인과도 이혼했다.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딸아이는 엄마를 따라갔다. “처음엔 사람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두려워지더라고요. 결국 사람 얼굴 자체를 못 보게 되고 말았어요.” 불과 석달 사이 김씨는 ‘정신질환자’가 돼 있었다. 2007년 우연히 주민들의 신고로 정신보건센터로 옮겨지기 전까지 그는 마음의 병을 안은 채 방치돼 있었다.

 

정신보건센터와 자살예방센터를 부지런히 오갔지만 그는 좀처럼 무기력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루 네차례씩 10알이 넘는 치료약을 먹어야 했어요. 죽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닌데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신보건센터에서 회원들에게 점심 대접하는 일을 하면서 숨구멍이 트였다. 이듬해 2008년 12월부터는 센터에서 만든 사회적 기업으로 옮겨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정신과 장애인들을 고용해 재활을 돕는 곳이었다. 첫 월급이 5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40만원을 받는다. “이혼할 때 딸아이한테 가장 미안했어요. 그래서 월급을 받으면 거의 전부를 딸아이 교육비에 보태다 보니 사실 제 손에는 한푼도 저축한 게 없어요.”

 

5년 남짓 먹던 정신질환 치료약도 3년 전에 끊을 수 있게 됐다. ‘주요우울장애’(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우울증) 여섯 글자가 선명히 박힌 장애인 등록증도 필요 없게 됐다. 병을 잃고 그는 생각을 얻었다. “저처럼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은 다시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위축되고 괴로워져요.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신질환자를 둔 가족, 그리고 사회에도 한마디하고 싶다고 했다. “정신질환에서 막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재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의 능률이 다른 사람보다 좀 떨어지더라도 배려해주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은 이런 생각을 해주세요. ‘저 사람이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다. 지금 밀면 넘어진다. 가만히 놓아두고 지켜봐주고 격려해주자’라고요.”

 

보건복지부에서 5년마다 벌이는 정신건강 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정신질환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이 2006년 8.3%에서 2011년 10.2%로 22.9%나 급증했다. 이에 견줘 정신의료서비스 이용률은 2011년 15.3%에 그쳐 미국(39.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김씨는 4일 충남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이 여는 3회 충청남도 정신건강 대축제에서 자신의 재활 사례를 소개한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출처] 한겨레뉴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31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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