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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자살대교’ 오명 마포대교서 올해 구조 86명 사연 등 분석해보니

 

충남 서산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아현(가명·16)양이 세 친구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 온 것은 지난 5월 21일 밤이었다. 며칠 전부터 카카오톡 채팅방을 개설해 자살 방법 등을 논의하다 누군가 마포대교를 얘기하자 이곳을 찾았다. 다행히 가출 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이 한강시민공원 풀숲에서 이들을 발견하면서 위험한 시도는 막을 내렸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를 잇는 마포대교는 한때 ‘서울대교’란 이름으로 불렸다. 1968년 시작된 한강개발계획 당시 여의도가 미국 뉴욕 맨해튼처럼 되리란 기대에서 ‘서울’이라는 상징적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93명이 이곳에서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자살대교’란 오명을 쉽게 떨어내지 못하고 있다.

마포대교는 과연 자살대교일까.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는 올 2월 21일부터 지나달 23일까지 7개월간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86명을 구조했다. 국민일보는 이들의 연령, 주거지, 구조 수단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분석했다. 질문의 답은 ‘젊은 층’에게 ‘더욱 그렇다’였다. 구조한 자살시도자를 전문기관에 인계하는 후속조치도 시급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에서 왔다

마포대교의 자살시도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왔다. 서울 마포구 용산구 영등포구 등 마포대교 인근에 사는 사람은 14명(16.3%)에 불과했다. 그 밖의 서울 지역과 경기·인천이 각각 23명(26.7%)으로 가장 많았다. 충남, 충북, 부산 등 먼 지방에서 올라온 이도 4명(4.7%)이었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영호(가명·26)씨도 그중 하나다. 마포대교에서만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서울 가는 버스를 탔고 마포대교로 갔다. 올 2월에도, 5월에도, 그리고 최근에도 매번 삶을 비관하며 마포대교에 올라섰다.

충남 천안의 서은(가명·16)양은 성적을 비관하며 5월에, 충북 충주가 집인 정남(가명·15)군은 삶에 의욕이 없다며 4월 마포대교 난간에 섰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이상욱 연구개발 팀장은 “미국의 금문교나 영국의 에드워드 다리 등도 자살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몰렸다”며 “투신은 충동적 행동이어서 다른 지역에서 자살시도자가 모여드는 상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도 컸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여의도지구대가 구조한 자살시도자는 3월(6명)의 2배인 12명이었다. 이 중 9명(75%)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16일 이후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 구조된 자살시도자 중 한 명은 “세월호 희생자를 따라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박종익 교수는 “평소 자살을 생각하는 고위험군의 경우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기 일처럼 아파하며 구체적인 자살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대의 비극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연령은 10, 20대가 61.6%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통상 젊은 층이 자살 방법으로 투신을 택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20대의 비율이 39.5%로 월등히 높은 점은 특이하다. 박 교수는 “젊은 층은 우울함을 느끼고 충동적으로 마포대교에 왔다가 충동적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순간적으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 10대보다 20대가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이라고 말했다.

자살 충동의 이유는 신변 비관이 34명으로 가장 많았다. 우울증이 14명으로 뒤를 이었고 가정불화가 13명이었다. 생활고와 이성 문제는 각각 10명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구조된 수영(가명·31)씨는 음악을 전공한 사운드 디자이너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뜻을 펼치지 못한 처지를 비관해 마포대교를 찾았다. 우울증으로 7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도 받아 왔다. 자살시도자를 구조한 후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후속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익명의 게이트키퍼, 행인과 택시기사

이 기간 자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여의도지구대가 구조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마포대교 투신이 급증한 만큼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관심도 높아진 덕이다. 지난달 8일 새벽에 구조된 진호(가명·44)씨도 난간에 앉아 있다 뛰어내리려는 것을 지나가던 시민이 경찰에 신고한 뒤 직접 끝까지 붙잡고 말려 구조됐다. 시민이 자살 위험 대상자를 발견해 전문기관에 신고하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포대교 자살시도자 중 32명(37.2%)이 주변 시민의 112 신고로 구조됐다.

택시기사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직업 특성상 자살시도자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86명 중 6명(7%)이 택시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구조됐다. 112 신고 때 택시기사임을 밝히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론 20%에 육박할 것이라고 경찰은 추정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윤진 팀장은 “이번 사례를 분석하면서 게이트키퍼로서 택시기사의 영향력을 절감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자살시도자를 만났을 때 대처법 등을 교육한다면 자살 예방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대교 곳곳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도 경찰의 빠른 구조를 도왔다. 18명(20.9%)이 생명의 전화로 직접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마지막 넋두리처럼 던진 이들의 말을 전문 상담사들은 끝까지 붙잡아 고귀한 생명을 지켰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이라도 머릿속에 죽고 싶은 생각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뛰어내리려는 충동과 살고 싶은 욕망이 뒤섞인 상태”라며 “일단 다리 위에서 수화기를 들었다는 건 ‘내 얘기 좀 들어 달라’ ‘살 이유를 알려 달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7시간 만에 두 번 구조된 여학생

지난달 16일 새벽 2시40분쯤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10대 여학생을 구조해 병원 후송 중이라는 전화가 여의도지구대로 걸려 왔다. 서둘러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경찰은 치료받고 있던 여학생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7시간 전에 자신들이 구조했던 은비(가명·19)였다. 분명 부모에게 인계했는데 은비는 물에 젖은 채 응급실 침대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하루 전인 15일 오후 7시28분쯤 “꿈도, 목표도 없다”며 투신을 시도한 은비를 구조했다. 재수생인 그는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대학 캠퍼스를 거닐 때 자신은 고향에 있는 게 싫어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경찰은 30분 이상 그를 설득한 뒤 급히 상경한 부모에게 인계했다. 부모가 은비를 고시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자 다시 마포대교를 찾은 것이다.

마포대교 자살시도자 중 경찰 구조 후 부모에게 인계된 사람은 44명(51.2%)이다. 지인을 부르거나 귀가시킨 경우(40명)까지 합하면 84명(97.7%)이 전문기관을 거치지 않았다. 정신건강증진센터나 생명의전화 등 상담기관에 의뢰한 경우는 2명에 불과했다. 경찰의 자살시도자 보호조치 업무매뉴얼에는 보호자가 인계 1순위고 보호자 연락이 안 될 때만 의료기관 등에 인계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시도자 구조 후 전문기관이 개입할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시점은 두 번이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할 때와 구조해 인계할 때. 서울시는 이 점을 감안해 경찰과 각 구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연결해 자살시도자를 상담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긴급 상황에 상담사가 매번 경찰과 함께 출동하기란 쉽지 않다. 정신건강증진센터 근무시간도 제한적이다. 야간에는 서울자살예방센터에서 서울시 전역을 담당하는데 센터의 야간·휴일 근무자는 3∼4명뿐이다. 자살 시도가 대부분 밤에 이뤄지는 점을 볼 때 이 인원으로 서울 전역을 관리하기란 역부족이다.

김형렬 여의도지구대장은 “마포대교 같은 곳은 분소 개념의 정신건강증진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자살예방센터 이구상 상임팀장은 “해외에선 자살시도자 본인이나 보호자에게 자살 징후 및 위험에 대한 교육을 한다.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황인호 기자

 

국민일보 2014.10.13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10916&code=11131100&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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