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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일어서기로 했어요”

“이 비겁한 놈아!”

이수철(가명·55)씨에게 이 한마디는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소심한 아들을 꾸짖으려 했던 말이 아들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 됐다.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들은 자살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남은 평생을 시달린다. 가족의 자살을 사실대로 주변에 말하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하다 많은 이들이 덩달아 생을 포기한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자살 유가족 모임 ‘자작나무’(자살유족의 작은 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 회원들은 지난해 12월 첫 에세이집 ‘자작나무-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펴냈다. 죄책감과 자책, 후회로 가득한 삶을 극복해 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아들의 삶을 마주하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인 것으로….”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이씨는 혀를 찼다. “요즘 애들은 의지가 약해서….” 일주일 뒤 이씨의 아들이 ‘나약한 요즘 애들’ 중 하나가 됐다. 아들은 컴퓨터에 유서를 남기곤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무기력해 보이는 대학생 아들이 못마땅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싸워도 맞기만 하던 아들이었다. 어느 날 저녁 평소와 다르게 상의할 게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아르바이트하던 독서실 주인아주머니가 월급을 적게 줘서 최저임금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고 했다.

“이 비겁한 놈아. 아주머니는 그간 너를 보살펴 준 분인데 상의도 없이 뒤통수를 친 거냐?” 버럭 화를 냈다. 불똥은 아들의 진로 문제로 튀었다. “너, 목표가 뭐야?” 가뜩이나 진로 문제로 초조해 하던 아들은 별다른 표정 없이 “아버지, 제가 부담스러우세요?”라고 되물었다. 좀 심했다고 생각한 그는 “늦었으니 자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새벽 2시 잠을 깬 이씨가 거실로 나가자 아들이 있었다. “얼른 자라” 하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게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들은 유서를 쓰다 잠시 거실로 나왔던 거였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씨는 병원 냉동고에 놓인 차가운 아들의 손을 잡고서야 처음 이 말을 했다.

아들이 다녔던 학교, 어울렸던 친구들…. 이씨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맸다. 늘 아들에게 “취미도, 꿈도 없다”고 나무랐지만 실은 자신이 아들을 전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들은 아들을 오페라 좋아하고 판타지 소설과 J팝(일본음악)에 심취했던 아이로 기억했다. 아들의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연애도 못할 줄 알았는데 제법 근사한 여자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죽은 아들의 방에 들어가 아들이 입던 옷을 입어보고 아들이 보던 책을 읽었다. 이씨는 “비로소 아들의 삶을 이해하고 내가 그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일어서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먼저 한 건 금주였다. 그리고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다. 차에 탄 손님들과 인생 이야기를 하며 누구나 다 힘들게 살고 있음을 절감했다.

세상 밖으로 내딛는 용기

박정은(가명·51·여)씨의 남편은 10년 전 사업에 실패해 도망치듯 태국으로 떠났다. 잠시 귀국했던 날 그는 “가기 싫다. 정말 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보름 뒤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택했다.

박씨는 에세이집에 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란 글에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당장 남편을 따라가고픈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순간, 큰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썼다. 박씨는 남편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 죄책감은 10년간 박씨를 괴롭혔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어준 것은 군에 입대하며 아들이 남긴 수첩이었다. 열한 살에 아빠를 잃은 아들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속상하다’고 적었다. 박씨는 그날 정신건강상담센터를 찾았고, 자작나무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 현실을 비관하며 감상에 젖는 대신 이성적인 조언을 건네며 여러 번 딱지가 벗겨진 상처를 위로한다. “열심히 살았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말이 가장 많이 오간다고 한다.

에세이집은 회원들이 각자 ‘나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작업의 결과물이다. ‘자살자의 가족’이라는 멍에 대신 본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써보는 과정이었다. 박씨는 “우리는 함께 모여 이야기하며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그려진 지도를 만들어갔다. 에세이 작업을 하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날 수 없었던 슬픔으로부터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출처] 국민일보 쿠키뉴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8197250&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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