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들을 치료해야 하는 부모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때로는 병의 경과나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정보보다 아이의 진료 경력이 군입대나 취직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누군가가 아이의 진료 내역을 열람하고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 보이기까지 한다.
의사로서 허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러한 상황들은 환자나 보호자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 주변인, 때론 동료 의사들에게서 정신과 환자에 대한 스티그마(stigma, 낙인)를 걷어내는 작업에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정신과 의사의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올여름 방영됐던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선물 같은 드라마였다. 어떨 때는 그 어떤 과학적 근거와 설득보다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 한방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환자들의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해준다는 게 고마웠다. ‘정신과 환자들을 차별하는 보험사들의 보험 약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병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추후 자녀의 기능에 더 큰 손상을 준다’고, ‘의무 기록은 본인이 아니면 열람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아도 멋진 배우들이 대신 울고, 웃고, 말해주니 고마울 수밖에.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는 ‘혹시 병에 대해 잘못된 내용이 나오면 어떡하나’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내려놓았다. 드라마의 목적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런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할 일이지, 드라마 관계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의사가 아는 병과 증상들에 대해 ‘일반인들은 저렇게 상상할 수도 있겠구나, 저렇게 이해하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보니, 더 깊은 재미와 감동이 느껴졌다. 더구나 판타지 추구(fantasy seeking)라는 재미도 없으면 무슨 드라마 볼 맛이 나겠는가.
예전에 ‘가장 잔인한 일본 사람의 이름은 뭘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까니마또까(깐 이마 또 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하필 아픈 데를 또 건드리니 얼마나 아플까. 세상 모든 사람을 환자 취급하는 태도에는 반대다. 하지만 누구든지 아플 수 있다.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은 그 아픔으로 인해 다른 이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아픈 사람은 비난하는 게 아니라, 위로해 줘야 한다. 드라마에서 배우 성동일씨의 대사가 참 인상 깊었다. “암이다, 다리가 잘렸다, 그런 환자나 장애인들은 위로나 동정이라도 받는데, 정신증은 죄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
정신증은 정신과 질환 중에서도 중증 질환에 속한다. 그들을 위로해 주자. 아픈 거니까. 차별과 편견으로 그들을 더 아프게 하지 말자. 그것은 ‘까니마또까’만큼 잔인한 일이다.
국소담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4.10.02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022050365&code=900303